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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인간유전체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의 비밀과 생명진화의 역할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02-27 조회수  212

인간유전체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의 비밀과 생명진화의 역할

 

바이러스는 다른 개체의 세포 안에서만 복제 가능한 작은 감염성의 물질이기 때문에 진핵생물, 원핵생물, 고세균 등 모든 생명체를 숙주로 이용하여 증식하는 생명체입니다. 문제는 만물의 영장임을 자부하며, 첨단기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과학자들 조차 바이러스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진화해 왔으며, 미래에는 어떻게 진화해 갈 것인지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몇 가지 가설이 있는데,

첫 번째 가설은퇴행 진화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바이러스는 자유롭게 살던, 다소 복잡한 기생 생물에서 기원했습니다. 고대의 바이러스는 숙주세포 내의 복제 기구에 점점 의존하게 되었고, 미토콘드리아처럼 자신만의 유전물질을 가지면서 세포 내에서 자가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마침내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숙주세포 내에서만 복제할 수 있게 퇴행한 것입니다.

두 번째 가설은세포 탈출이론입니다. 즉 바이러스는 처음부터 독립된 생물이 아니었고, 세포에서 떨어져 나온 부산물이라는 주장입니다. 세포의 디엔에이 또는 RNA가 자가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얻고, 바이러스의 껍데기라고 할 수 있는 비리온(virion) 단백질을 만들어 세포를탈출한 것입니다.

마지막 가설은독립적 또는 평행적 진화이론인데, 위의 두 가설과는 반대로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와는 별개로 바이러스가 생겨났다는 이론들의 통칭입니다. 각 가설의 장단점을 자세히 논하진 않겠지만, 한 가지 사실만 주지하면 바이러스의 놀라움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은 대부분의 세포가 바이러스를 세포 바깥으로 방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세포가 손상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어쨌거나 세포 생명체 사이에 진화적으로 널리 보존된 현상임은 자명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포가 바이러스를 방출하는 능력(또는 바이러스가 세포 밖으로 탈출하는 능력)이 자연선택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해 살아남은 현상임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바이러스의 증폭과 확산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세포가 유리한 점이 있었다면, 그런 세포들로 구성된 생명체도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이러스 숙주 역할은 세포라면 공유하고 있는 당연한 특성 같아 보입니다.

세포-바이러스 연합이 지닌 이점이란 무엇일까요? 또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이리도 널리 퍼졌을까요? 첫 번째 이점은 수평적 또는 수직적으로 유전자 일부를 널리 퍼뜨리고, 새로운 숙주의 유전체 내부로 침투시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즉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자뿐 아니라 숙주의 유전자도 함께 퍼뜨리면서 충실한 심복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숙주 입장에서는 적당한 복제공장만 잠시 빌려주면, 일부나마 자신의 유전자를 다른 세포에 퍼뜨릴 기회를 얻는 셈입니다.

두 번째로 고려할 것은 바이러스가 진화 과정의 촉진자로서 활약할 가능성입니다. 기본적인 진화의 흐름은 유전적 변이가 생기고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에 차이가 발생함에 따라 진행된다는 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진화 이론에 부분적으로나마 반대하는 의견 중 핵심은, 유전적 변이를 만들어내는 돌연변이라는 현상 자체가 매우 드물게 일어나기 때문에, 그 모델만 따르자면 진화가 너무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빠르고 큰 진화적 도약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바이러스 유전자가 숙주 유전체 내에서 이동하는 도중에 숙주 유전자에 큰 변화(유전자 결손, 역위, 재조합 등)를 만들어 유전체 불안정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개체 하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러한 유전적 불안정성은 재앙이 될 공산이 큽니다. 그러나 진화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전적 변이 또는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바이러스의 힘은 진화를 채찍질하는 무법자의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세 번째 이점은 자연적인 생물학 무기 기능입니다. 포식자나 경쟁하는 종에 대한 공격 병기로써 바이러스가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바이러스가 침투 가능한 종의 경계를 손쉽게 허문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곤충이나 거미 같은 절지동물이 포유류를 감염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의 근원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인류에게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대부분도 동물성 감염으로 종간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에게 전파된 것입니다. 잘 알려진 에볼라, 말버그, 사스-코로나, HIV 등도 모두 동물에서 전달된 바이러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원래 바이러스를 지녔던 최초의 근원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세포가 바이러스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바이러스 무기를 휘둘렀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바이러스의 파괴력이 특정 종간의 경쟁 관계를 휘저어 버렸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자연 속에서 돌아다니며 생명체의 진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단순히 바이러스를 질병을 일으키는 무언가로 보는 관점은 지나치게 협소하고 낡은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세포가 바이러스를 방출하는 능력이 있고, 이 능력이 진화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바이러스가 생명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바이러스의 중요성과 비교하면 바이러스에 대한 정확한 지식의 양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여러 가지 변명이 가능하겠으나, 바이러스가 너무 다양하다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바이러스는 숙주 내에서 복제하는 전략, 유전체의 복잡도, 생태 내에서 숙주와의 관계, 유전자의 순환 방식 등이 바이러스마다 너무나 다릅니다. 아직 바이러스가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기원했는지 아니면 여러 개의 혈통을 가졌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대규모 비교 유전체학이 힘을 내 준다면 앞으로 조금씩 바이러스에 대한 수수께끼는 풀릴 것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생명의 신비 이전에 현생 인류가 바이러스의 공격에 쓰러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학자들이 당면한 문제는 어떻게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예쁜 꼬마선충이 던져준 방어법에 대한 힌트를 소개하겠습니다. 답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수차례 소개되었던 알엔에이 간섭(RNA interference)입니다.

RNA 간섭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체계로서 기능한다는 것은 훨씬 나중에서야 확립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쁜꼬마선충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를 자연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이러스를 막아낼 것 같은 무기는 가지고 있는데 정작 쳐들어오는 바이러스가 없으니 이게 정말 무기가 맞는지 연구자들도 갑갑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궁하니 통하였는지 억지로 길을 만들어 낸 두 그룹이 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딩(Shou-wei Ding) 그룹과 아칸소 대학의 마차카(Khaled Machaca) 그룹은 급기야 널리 연구되고 있던 포유류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예쁜꼬마선충에 감염시키기에 이릅니다.

딩 그룹에서는 집떼 바이러스(Flock House Virus, FHV)의 유전자를 미세주입법(microinjection)을 이용해 예쁜꼬마선충의 생식선에 주입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서 바이러스 유전자를 세포 내에 가지고 있는 개체들을 골라내어 연구했습니다. 말하자면 세포 내로 직접 바이러스 유전자를 이식해준 것입니다. 바이러스 입자 자체가 온전한 형태로 세포에 침입한 것이 아니므로 감염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예쁜꼬마선충의 세포 내에서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가 RNA로 잘 전사되며 복제도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바이러스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예쁜꼬마선충으로부터 추출한 RNA가 초파리 세포를 감염시키고 내부에서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추가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결코 온전한 형태의 바이러스가 옮겨간 것이 아니니 바이러스의 감염 상황을 정확히 재현한다고 보기에는 힘든 면이 있습니다.

마차카 그룹에서는 조금 더 그럴듯한 방법을 사용하여 수포성 구내염 바이러스(Vesicular Stomatitis Virus, VSV)를 예쁜꼬마선충에 감염시킵니다. 우선 초기 단계의 예쁜꼬마선충 알을 꺼내어 알껍데기을 살짝 분해할 수 있는 효소들로 처리하여 짧은 시간이나마 개별적인 세포의 형태로 배양 가능한 1차 세포(primary cell)를 만듭니다. 여기에 직접 배양한 바이러스를 정제하여 뿌려주고 실제 감염이 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다행히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가 얻어져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예쁜꼬마선충 개체에 수포성 구내염 바이러스를 뿌려주어 봤자 감염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자연스러운 실험 방법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 세포 내에서 바이러스의 활동을 연구할 수는 있었지만, 세포 간 바이러스의 수평적 이동은 관찰할 수 없고 바이러스 복제 주기에 대해서도 알 수 없으므로 한계가 분명한 실험 모델입니다.

두 그룹이 연구한 RNA 간섭을 이용한 면역에 관한 내용은 2005 <네이처>에 백투백으로 실렸습니다. RNA 간섭 기구들에 대한 지식은 이미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기구들 중 어느 부분이 바이러스 면역에 관여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비교적 순탄한 작업이었겠지만, 예쁜꼬마선충의 유전학적 강력함을 바이러스 연구와 연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많은 연구자가 열광했습니다. 그러던 중 진실로 예쁜꼬마선충을 감염시키는 자연적인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으니 학계에 큰 행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글의 주제 논문의 주인공인 프랑스 마리-앤 펠릭스(Marie-Anne Felix) 연구팀이 이런 발견 과정에서 큰 공헌을 했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예쁜꼬마선충의 생태를 연구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여성 연구자인 그는 프랑스 각지에서 가져온 썩은 과일들에서 야생의 선충을 찾고 관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세포가 비정상적인 형태 이상을 보이는 일군의 예쁜꼬마선충을 찾아냈고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할 때 별다른 감염원이 보이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개체들에서는 장세포 내 에너지원을 저장하는 작은 입자 모양의 소기관인 저장과립(storage granule)이 사라져 있었으며 세포질이 점성을 잃고 액체처럼 흐물거리는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또 세포핵이 길어지거나 퇴화해있기도 하고 세포끼리 융합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체 안에서 알만을 깨끗하게 걸러내어 부화시키면 장세포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개체들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장세포 이상 표현형이 세대를 거쳐 수직으로 전달되지는 않음을 의미합니다. ,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 때문에 나타난 현상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음 실험에서는, 장세포 이상을 보이며 죽은 개체를 건강한 개체의 곁에 두었더니, 대략 1주일 뒤부터 건강한 개체도 비슷한 이상 증상의 표현형을 보인 것으로 관찰됐습니다. 또는 감염된 개체를 많이 모아서 곱게 간 뒤에 미세한 필터로 거른 추출물을 건강한 개체에 뿌려주어도 1주일 뒤에 이상 징후를 보였습니다. 무언가 감염성 물질이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최종적으로, 전자현미경 사진을 통해 지름이 20나노미터 정도 되는 바이러스 같은 입자를 마침내 확인했습니다. 마리-앤 펠릭스는 이 바이러스에 처음 발견된 곳의 지명을 따서 오르세 바이러스(Orsay Virus)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오르세 바이러스는 장세포를 심각하게 망가뜨리는 것에 비해 수명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낳을 수 있는 자손의 수도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자손을 만들어 내는 속도가 상당히 줄어든 것이 눈에 띄는 점이었습니다. 바이러스가 자손에게 수직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은 바이러스 유전자가 숙주의 유전체에 끼어들어 있지는 않다는 의미입니다. 즉 오르세 바이러스의 확산에는 수평적 이동이 중요하게 작용함을 알 수 있습니다. 수평적 이동으로만 실험실에서 50세대 이상 바이러스가 유지되는 것으로 보아 전파능력이 꽤 좋은 편이며, 감염된 개체의 배설물을 다른 개체가 섭취함으로써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펠릭스가 가장 하고 싶었던 실험은 실제로 RNA 간섭이 바이러스 방어에 관여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두 실험이 바이러스 감염 상황을 인공으로 재현한 것과는 달리, 오르세 바이러스는 스스로 충분히 예쁜꼬마선충을 감염시킵니다. 펠릭스의 새로운 연구에서는 예상과 일치하게 완전히 자연스러운 조건에서 RNA 간섭이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바이러스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RNA 간섭이 망가진 예쁜꼬마선충 돌연변이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예쁜꼬마선충 내에 훨씬 많은 바이러스 RNA가 축적되고, 예쁜꼬마선충은 더 심각한 이상 징후를 보였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예쁜꼬마선충 간에는 RNA 간섭 능력 차이가 존재하고, 이 차이가 바이러스에 대한 대처 능력과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개체마다 바이러스에 대한 민감성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바이러스 대처 반응을 조절하는 유전자에 차이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민감성의 차이를 결정하는 유전자 영역을 규명할 수 있다면 선천적으로 내재된 항-바이러스 기작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금 더 나간다면 꼬마 RNA로 인한 RNA 간섭 현상 자체의 진화에 대해서, 그리고 숙주와 바이러스의 공진화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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